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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 보여주는 손가락 | 김치샐러드
    비문학 2012. 12. 24. 23:58




    그림 보여주는 손가락

    저자
    김치샐러드 지음
    출판사
    학고재 | 2006-08-05 출간
    카테고리
    예술/대중문화
    책소개
    명화를 읽는 탁월한 재치, 슬픔을 보듬는 따스한 해학으로 누리꾼...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나는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글'보다 '그림, 사진, 영화'같은 시각매체가 훨씬 호소력 있음을 수긍한다. 책 표지를 보면, 번쩍 치켜들고 있는 검지에 자리잡고 있는 대머리가 눈에 든다. 눈동자 없이, 그대로 있으면 침이 흐를 것 같은 네모난 입과 오똑한 콧날. 이 책은 우울해서 재밌다. '이 녀석은 대체 뭐냐고 김치샐러드 씨에게 다짜고짜 묻고픈 충동이 온몸을 찔러댔다. 인내는 쓰나, 열매는 달다던 말이 맞았을까. 책장을 덮고 결론을 내렸다. 홀로 우뚝 선 검지 손가락은 이 책의 모든 내용을 상징하는 방향키였다.

     

      책은 읽는 사람이 완성한다. 산문보다 운문─시(詩)─은 더욱 그렇다. 숨겨진 이야기가 많을수록, 읽는 사람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글은 그나마 낫다. 글쓴이의 생각이 잘 드러나는 편이니까. 설명문은 친절한 안내원이지만, 문학은 장난꾸러기 요정이다. 밑도 끝도 없이 그냥, 그대로 있는 것을 이해하는 몫은 오롯이 '보는 사람'에게 달렸다. 예술은 그 끝에 있다.

     

      사람은 생각하는 갈대랬다. 요즘의 어떤 비평가는 대중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찔러댄다. 아무런 생각없는 사람이라며 콕콕 찌른다. 그런데 비평가들이 스스로 찌르는 걸 나는 본 적이 없다. 오늘은 봤다. 비평가는 아니지만, 자신을 사정없이 찔러대는 솔직한 손가락을 봤다. 나는 '대머리 손가락'이란 이름을 붙였다.

     

      대머리 손가락은 열두 가지의 얘깃거리로 그림을 보여준다. 슬슬 긴장되기 시작할 수밖에 없다. 할 수 있다면, 랭던 교수의 도움을 청하고 싶다. 그림을 포함한 모든 예술품은 언제나 '보기 나름'이다. 다비드 상의 거대한 '그것'이 예술의 일부가 될 수도 있고, 외설의 전부가 될 수 있듯. 이 책의 그림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끌고, 한참 웃게 만들었던 내용은 '미친년 코드'였다. '미친년'하면 둥실 떠오르는 세 가지─꽃, 비오는 날, 웃음─를 열쇠로 퍼즐을 풀어가기 시작한다.

     

      "미친년은 미침으로써 관습, 인습 등 인간적인 것에서 벗어나 '자연'이 된 거고, 그 첫 행동으로 자연의 일부분인, 손쉽게 얻을 수 있고 예쁘기까지 한 꽃을 꺾어 머리에 꽂는 거야."-pp.46-47

     

      '꽃'의 기호에 숨겨진 의미를 분리한 대머리 손가락은, 계속해서 '비오는 날 미친년이 날뛰는 이유'를 풀었다. 꽃의 생명을 잇는 물, 처음 태어나는 공간인 물, 사람을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는 물의 성질은 '자연'의 코드와 연결되면서 자물쇠가 풀렸다. 대머리 손가락은 쉬지 않고, '미친년이 웃는 이유'를 캐냈다.

     

      "겉만 맴도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아. 진짜로 하고 싶은 게 뭔지도 몰라. (이런 건) 생존 노하우야. 나는 뭐하러 사나, 하는 생각을 지우기 위한. 그래서 더더욱 비자연적인 허례허식과 사회 규율을 만들어내고, 스스로 거기에 정신없이 휘둘리지. 미친년의 눈으로 볼 때 이것만큼 웃기고 미친 짓이 또 있을까?"-pp.113-119

     

      대머리 손가락은 퍼즐을 후루룩 맞추다 갑자기, 읽는 사람에게 질문을 던졌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뭔가에 미쳐본 적 있어?" -pp.122-123

     

      모두 12화에 이르는 그림과 이야기는 수많은 하천이 드넓은 바다로 모이듯, 하나의 코드로 모였다. '외로움과 존재'에 대한 이야기로 열두 하천은 모여들었다. 내가 해석한 '외로움과 존재'라는 바다는 '나의 해석'이다. 김치샐러드 씨가 대머리 손가락과 아귀를 내세워 그림을 해석한 것은 '그의 해석'이다. 이 책의 묘미는 그 다음에 있다.

     

      하나의 화제는, 꽤 많은 덧글과 짧막한 글이 끝을 정리했다. 다양한 사람들이 대머리 손가락의 해석에 동의하거나 반박하는 이야기를 했다. 파스칼의 말을 다시 떠올리는 방법밖엔 없었다. 사람들은 '이건 어떻소'라고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며, 저마다 이런저런 생각을 뱉어냈다. 눈동자조차 없이 맹한 대머리 손가락이 소크라테스처럼 보인다. 그림이란 소재를 슬쩍 던져 놓고, 자신의 해석을 조곤조곤 풀다가 마무리는 질문이다.

     

      그림은 기호 덩어리다. 밑도 끝도 없는 사물이 아니고, 비유와 상징이 교묘하게 섞여 있는 샐러드다. 홀로 우뚝 선 대머리 손가락. 이 책을 한 번만 읽어 보라는 표시이고, 외로운 사람이고, 책장을 펴는 사람에게 '생각꺼리'를 가리키는 존재였다. 책장을 덮으며 기도했다.

    "미술 이론 수업을 이처럼 할 수 있기를!"

     

    <책에서>

    "인생이라는 창자에 매일매일 의미 없는 일상을 세월의 힘으로 꾸역꾸역 채워나가다 보면, 언젠간 처음부터 끝까지 무의미한 나날들로 꽉 채워진 순대가 완성되겠지. 순대는 어느 곳을 잘라도 같은 단면을 하고 있지." -pp.257-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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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oem_정원사_책들이 있는 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