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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긴 어게인 | 청춘의 튜토리얼
    영화/공연 2014. 9. 21. 01:52
    1. 두 가지 의미의 '스트링 string'

      스트링(String, 줄)을 다루는 영화였습니다. '인연'과 '음악' 두 가지 의미에서 '스트링'이었지요. 이야기는 뉴욕의 어느 클럽에서 대뜸 시작됩니다. 한눈에 봐도 성격좋아 보이는 남자가 자신의 친구를 소개하는 말을 하며, 무대로 여자를 이끌어냅니다. 영국에서 온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는 처음에는 거부하다가, 마지 못해 무대에 서서 노래를 부르지요. 기타 하나의 반주에 맑은 목소리가 썩 좋았습니다. 궁금해졌습니다. 그레타는 왜 이곳 밤의 카페에 오게 되었을까. 도입부는 몇 가닥의 실마리가 삐져나와 있는 동앗줄의 단면을 보는 듯했습니다.

      그런 뒤에, 영화는 그 장소에서 매듭을 짓게 되는 사람들 각각에 초점을 맞춥니다. 두터운 동앗줄을 이루고 있는 하나하나의 작은 실들이 어떤 사연을 갖고 하나의 장소에서 만나게 되었는지 설명하기 시작하지요. 탁월한 음반 제작자였지만, 알콜 중독과 독단적인 성격으로 해고된 '댄'(마크 러팔로)의 사연이 풀리고, 뒤이어 그레타가 영국에서 뉴욕으로 오게 된 사정이 차근차근 설명됩니다. 그렇게 가장 뚜렷한 두 개의 실이 하나의 줄기를 이룬 다음, 또 다른 인연의 끈이 뭉쳐서 '현악string'이 살아있는 음악이야기를 만들어 갑니다. 중요한 소품인 'Y잭'이 상징의 열쇠!

    영화의 열쇠, Y잭

      그레타와 댄은 모두 '인연'과 '음악'의 두 가지 줄이 끊어진 상태로 만나게 됩니다. 다른 동료들과 함께 앨범을 만들어 가면서, '다시 시작 begin again'하는 경험을 하게 되지요. 댄은 아내와 딸이라는 '인연'으로, 그레타는 '음악'을 통해 다시 자신의 삶을 꾸려가게 됩니다.

    2. 순수와 산업화

      이 영화는 무거운 문제를 끓인 육수에 젓가락만 담궜다가 빼서 간만 봅니다. 노래를 주된 표현 방법으로 삼는 영화가 품고 있을 수밖에 없는 한계일 수도 있겠지만, 현실 속에서 풀기 어려운 문제를 아주 가볍게 스쳐갑니다. <비긴 어게인> 속에 담긴 가장 큰 문제는 '순수성과 산업화'의 갈등이지 않을까 합니다.

      그레타는 싱어송라이터로서 '자신의 만족'을 위해 곡을 씁니다. 그의 남자친구인 데이브(애덤 리바인)도 그랬지요. 그러다 데이브가 영화 음악으로 성공하고, 락스타의 길을 걷게 되면서 '자신의 만족'을 위한 음악이 아닌, '대중―타인의 만족'을 위한 음악에 무게를 두게 됩니다. 그레타는 데이브가 '순수성'을 잃어버린 모습을 보고, 자신과 다른 길을 선택한 그에게 이별을 고합니다.

    순수한 음악성으로 성공한 아티스트가 누구라고?

      순수와 산업화의 꼭지는 꽤 여러 번 등장합니다. 댄이 그레타에게 주목한 것도, '음악성과 상업성'을 모두 보았기 때문에 접근했었거든요. 음반 제작자에게 퇴짜를 맞았을 때, 그레타에게 '길거리 녹음'을 제안한 것도 '산업성'을 포기한 게 아니라,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부족한 자본력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이었습니다.



      영화의 주제가 격인 "Lost Stars"는 청년의 어려움을 이야기합니다. 순수한 열정으로 가득한 청년들은 길 잃은 별이 되어 있습니다. 충분히 반짝이고, 세상을 빛낼 수 있는 별이지만 어디에서 그 빛을 제대로 발할 수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목장에서 곱게 자라다가 어느 날 갑자기 늑대가 살고 있는 초원에 방목된 어린 양처럼 사방팔방으로 달려갑니다. 뛰지 못하면, 뒤쳐지게 되면 사냥당하고 마니까요.

      <비긴 어게인>은 길 잃은 청춘들에게 응원가 같은 영화입니다. 다시 시작하라고, 순수한 열정이 있다면 어떻게든 방법은 있다고. '댄'처럼 아직 '열정을 잃지 않은 어른'이 구원의 손길을 뻗어줄 거라고 격려합니다.

    3. 당신의 시는 무엇입니까 | 104분짜리 애플&아이튠즈 장편 광고

      지금부터는 지적질입니다. 영화의 이야기는 단순합니다. 영국에 살던 여자가 남자친구 따라 뉴욕에 왔다가 차이고, 키다리 아저씨를 만나서 IT기술에 재능을 섞어서 성공하는 이야기입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판소리'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판소리가 딱 그렇거든요. 서사적인 이야기는 재밌는 하나의 장면에 초점을 두고 끌어가다가, 감정적인 부분은 '창'으로, 노래를 통해 쏟아내는 구조입니다. 이야기와 노래로 호흡을 조절하는 게 비슷했습니다. 이런 형식의 장점은 보는 내내 지루하지 않다는 것이고, 단점은 별 이야기가 없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 보는 내내 의혹을 품었던 게 풀렸습니다. "이건 애플의 장편 광고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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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플로 이렇게나 많은 걸 할 수 있어요.

      열정과 재능만 갖고 있는 청춘에게 '산업화된 사회'는 요구하는 게 많습니다. 우리나라의 청춘은 취업하기 위해 엄청난 스펙을 갖추지만, 정작 회사에서 맡는 업무는 서류 정리와 잔심부름입니다. 그레타는 음반 제작사에서 수익을 분배하는 비율을 보고 비난합니다. 10달러의 앨범 중에 아티스트가 1달러만 가져가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은 제작사가 9달러를 가져가는 구조를 지적하면서, 그간 만들었던 음원을 아이튠즈에 올려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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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레타와 동료들의 재능으로 쓴 그들의 '시'는 이런 과정을 거쳐서 발표됐습니다. 자동차로 '이동식' 스튜디오를 만들어서 애플의 맥북으로 녹음하고 편집합니다. 그리고 아이폰으로 서로의 생각을 전달하고, 음악을 듣습니다. 마지막에는 CD로 찍어내지 않고 아이튠즈에 1달러 앨범으로 올려버립니다. 댄의 인맥을 통한 SNS홍보로 끝. 발표 첫날 1만장이 판매되는 해피엔딩으로 영화가 끝납니다.

      영화는 나쁘지 않습니다. 너무 상업적이거나 천박하지 않고, 적당한 깊이로 심금을 자극하는 재주가 있습니다. 새삼 놀랐던 건 애덤 리바인의 연기가 어색하지 않았다는 것과, 키이라 나이틀리가 노래를 잘하더라는 것 정도. 아, 그리고 주목하셨는지 모르겠지만, 댄이 그레타와 썸이 있었는가 없었는가―하는 점은 이 장면이 힌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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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백했다가 차였!)



    비긴 어게인 (2014)

    Begin Again 
    8.8
    감독
    존 카니
    출연
    키이라 나이틀리, 마크 러팔로, 애덤 리바인, 헤일리 스타인펠드, 제임스 코덴
    정보
    로맨스/멜로 | 미국 | 104 분 | 2014-08-13
    글쓴이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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