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 2013. 5. 17. 10:01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세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출판사
    비채. | 2013-05-04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소설보다 흥미로운 전설의 에세이 '무라카미 라디오' 완결판!책을...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글을 쓰는 사람의 진짜 모습과 가장 가까운 모습을 보려면, 그의 소설이 아니라 편지나 에세이를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설가의 문체는 일종의 도구와 같은 성격이 있기 때문이다. 대체로 '이 작가의 소설은 이런 느낌이 난다' 정도는 가늠할 수 있겠지만, 경우에 따라서 어떤 내용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에 따라 문체는 달라지기 마련이다. 이런 이유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좀 버거워 하는 사람들도 그의 에세이는 재미있게 읽어낸다.

      하루키의 에세이는 샤워 후 마시는 캔맥주 맛이다. 그저 그렇게, 또는 버겁게 지나간 하루를 마치고 집에 들어온다. 갑갑했던 '사회생활용 옷'을 모두 벗어버리고 욕실에 들어간다. 그리고 거침없는 물벼락 맞기. 젖은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탈탈 털면서 나와, 곧장 냉장고 문을 열고 맥주 한 캔을 꺼내고는 바로 딱! 치익―. 그리고는 숨이 막혀 차오를 때까지 단숨에 들이켜버리는 맥주의 맛.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는 그런 맛이다. 부담없이 시원한, 막힌 속을 뚫어주는 맛.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는 하루키가 여성 패션잡지 <앙앙>에 연재한 에세이를 모아서 묶은 세 번째 책이다. <저녁무렵에 면도하기>,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가 이 녀석의 형님들이고. 잡지에 연재한 글의 특성상 이야기는 짧고 경쾌하다. '아저씨 소설가'가 20대 여성들이 보는 패션잡지―특히, 엘르걸이나 보그걸, 코스모폴리탄, 인스타일 류―에 연재한 글이라는 걸 떠올려보면, 자신의 경쾌한 모습이 나타나기 마련이지 않았을까. 

      대체로 이 책의 분위기는 이랬다. 평소에 자주 보던 물건이 있다. 그런데 누군가가 이 물건의 치수를 알려 달라고 한다. 가지고 있는 건 50cm 플라스틱 자, 인치로 눈금이 표시된 대나무 자만 있다. 그런데 어느 자로도 정확하게 잴 수가 없다. 미터든 인치든 그 물건의 모서리는 눈금 사이로 교묘하게 빠져나간다. 그래서 답답하던 차에, 한 아저씨가 슬리퍼를 끌고 와서는 자를 부러뜨린다. 그리고, 자기 허리띠를 풀어서 물건에 대보고는 '이정도구만!'하고 지나가버리는 거다. 아래의 문장이 그 증거물이다.

    '여성은 화내고 싶은 건이 있어서 화내는 게 아니라, 화내고 싶을 때가 있어서 화낸다'라는 것이다. -p.18

    사람들이 열 대 정도 나란히 있는 고정식 바이크 머신에서 열심히 페달을 밟고 있는 걸 보면 이걸 발전하는 데 이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 사거리 신호등 전력 정도는 감당할 수 있지 않을까? 이집트 피라미드도 거의 인력으로 만들었으니 한 사람의 힘도 많이 모으면 절대 무시할 게 못 된다. -p.48

    그런데 어느 때부터 재즈는 까칠한 음악이기를 그만둔 것 같다. 시민권을 얻었다는 것이겠지만, 그만큼 둥글둥글해져서 찌릿찌릿한 자극은 덜해졌다. -p.90

    '이번 총리의 뇌는 반밖에 차지 않았네'라고 생각하는 것과 '이번 총리의 뇌는 반이나 차 있네'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우리 인생의 양산은..... 으음, 거의 달라지지 않을지도. -p.156

      뭘 그렇게 한 곳에 웅크려서 세상을 보나! 달리보면 재미있잖아―에 가까운, 가벼운 일갈. 어떤 글에서는 자신의 글쓰기에 대해서도 솔직한 고백을 하기도 하고, 영어를 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고 투덜거린다. 하루키의 에세이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달리기 이야기도 여전하고, 선물을 고르는 사람의 배려심 평가하기 따위의 꼭지들도 아주 골고루 담아뒀다. 이런저런 채소를 한 그릇에 담은 샐러드, 그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처럼 재밌게 이상한 아저씨는 여전하다.


    <책에서>

    에세이든 소설이든 문장을 쓸 때 친절심은 대단히 중요한 요소다. 되도록이면 상대가 읽기 쉬우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써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 시도해보면 알겠지만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알기 쉬운 문장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생각을 깔끔하게 저옹하고, 거기에 맞는 적절한 말을 골라야 한다. 시간도 들고 품도 든다. 얼마간의 재능도 필요하다. 적당한 곳에서 "그만 됐어" 내던지고 싶을 때도 있다. -p.23

    영어를 '회사 내 통용어'로 삼으려는 일본 기업도 있는 것 같은데, 뭐, 그것도 중요하겠지만 동시에 '자신의 의견'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을 육성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p.55

    여행을 수없이 하다보면 약간의 철학이 생겨나는데, '편리한 것은 반드시 어딘가에서 불편해진다'라는 것도 그중 하나다. -p.75

    선물을 잘 고르는 사람을 보며 느끼는 것인데, 선물을 고를 때 에고가 드러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 옷은 내 마음에 드네'라든가 '이 옷을 그 사람한테 입혀보고 싶네'라는 식으로 자신의 마음이 앞선다. 그런데 잘 고르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상대의 입장에서 상대의 마음이 되어 물건을 고른다. -p.87

    상처입지 않도록 두꺼운 갑옷을 입거나 피부를 탄탄하게 하면 통증은 줄지만, 그만큼 감수성을 날카로움을 잃어 젊을 때와 같은 싱싱하고 신선한 눈으로 세계를 볼 수 없게 된다. 요컨대 우리는 그런 손실과 맞바꾸어 현실적 편의를 취하는 것이다. 뭐, 어느 정도 불가피한 일이긴 하지만. -p.144~146

    '왜 야자수는 키가 큰가요?' 같은 문제는 전혀 화제에 오르지 않았다. 아무도 그런 것을 일일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인터넷은 정말로 알고 싶은 것은 모른다'라는, 전부터 내가 주장하던 것이 또 증명된 셈이다. -p.218

    댓글

cpoem_정원사_책들이 있는 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