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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안에서 시작하는 비극의 희극화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을 중심으로
    無序錄 2013. 4. 20. 13:33

    1. 불안의 종류

        1.1. 비교 불안

        1.2. 관계 불안

            1.2.1. 사람과 맺는 관계에서 오는 불안

                1.2.1.1. 협동적 집단(Gemeinschaft) : 인정과 공유

                1.2.1.2. 이익집단(Gesellschaft) : 선택과 갈등

            1.2.2. 사물과 맺는 관계에서 오는 불안 : 목적과 수단

        1.3. 존재 불안

            1.3.1. 생명의 위협

            1.3.2. 존재 가능성의 차단

                1.3.2.1. 시간과 공간

                1.3.2.2. 이미 존재하는 세계

    2. 불안을 막는 장치

        2.1. 합리화 : 비교 불안의 해소법

        2.2. 사랑 : 이익집단에서 협력집단으로 회귀

        2.3. 반성 : 물건과 나의 관계 돌이켜보기

        2.4. 망각 : 시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의 몸부림

    3. 맺음 : 불안과 자각. 가능성의 최대화.

    4. 관련서적

     

     

     

      우리는 원치 않게 태어났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세상에 '내던져'졌다. 게대가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의 씨앗을 품고 세상에 던져졌다. 인생이 보통 비극인 근본적인 원인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죽음으로 소멸할 수밖에 없는 존재에게 '가치 있고, 의미있는 것'은 오로지 '삶의 과정' 밖에 없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이 곧장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가치를 지닌 존재인가?'로 연결된다.

     

      사람은 자신이 소멸할 것, '나는 죽는다'라는 진리를 좀처럼 떠올리지 않는다. 죽음의 그림자를 삶의 무대 뒤로 밀어두고 지낸다. 지금 서있는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도 받지 못하고 있는데, 죽음의 그림자까지 고려할 여유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조금씩, 조금씩 저 먼 곳으로부터 타인의 죽음을 듣는다. 우리는 타인의 죽음을 통해 각자 몸에 품고 있는 죽음의 씨앗이 움트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어느 날, '나의 무대' 위에 '죽음의 씨앗'이 조명을 받게 되는 순간이 오는데, 그 순간 사람들은 '불안'을 느끼게 된다.

     

    1. 불안의 종류

     

      불안의 종류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비교 불안', '관계 불안', 그리고 '존재 불안'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1.1. 비교 불안

     

      첫째는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에서 오는 '비교 불안'이다.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는 현대 사회, 평등화 된 사회일수록 그 정도가 심해진다. 정치적으로나 신분 자체에 차이가 있을 경우에는, '비교 불안'의 정도가 심하지 않다. 농민들이 대감, 정승을 보며 자신의 처지를 비교하면서 불안에 빠지는 일은 없다. 단지, 농민들끼리나 양반들끼리의 비교 불안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근대 이전 시대에는 경제 구조와 생산의 절대량 부족으로 지금과 같은 비교 불안은 발생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신분의 차이가 없는 지금의 평등 사회에서는 비교 불안이 일상적으로 나타나고, 거의 대부분의 불안이라고 볼 수 있다.

     

      비교 불안의 근본 원인은 '모두가 같은 존재 가치를 가진 사람'이라는 명제를 전제로 삼는 것으로 출발한다. 모두가 같은 사람이라면, 눈에 보이는 차이나 차별은 없어야 한다고 여기게 된다. 뒤이어, '나와 너의 존재 가치가 같다면, 네가 누리는 것은 나 역시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전제는 확장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나와 너의 차이를 만들어 낸다. 과거, 신분제가 있을 때는 '신분-정치적'으로 그 차이를 드러냈다면, 정치적으로 평등한 사회에서는 '풍요-경제적'으로 현격한 차이를 드러낸다.

     

      여기에 각 사회가 채택한 경제구조가 가치 판단에 개입하게 된다. 지금 한국 사회를 보자면, '자본주의'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두 번째 생각에 다음과 같은 수정이 생긴다. '나와 너의 가치가 같다. 네가 누리는 경제적 풍요는 나 역시 누려야 한다' 이 생각에 이르게 되면, 기존에 경제적 부를 더 많이 갖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도구를 개발한다. 그 중에 경제적 선별 장치로 작동하는 것은 '능력주의'이고, 정치적 도구로 이용되는 것이 '전문가에 의한 통치'이다. 물론, 그들이 개발한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 사회적 권력을 갖고 있었음은 물론이다. 그들은 자신의 자식들에게 경제적 신분을 세습하기 위해서, '능력의 계발'과 '전문가 되기'를 강조하며, '학력'을 보조 장치로 만들어 냈다. 우리나라도 역시, '능력주의'와 '전문가에 의한 통치'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고, '학력(또는 학벌)주의'가 보조 장치로 기능하고 있다.

     

      '능력의 차이'와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차이', '학력의 차이'로 나타나는 결과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경제적 차이를 만들어 낸다. 보통 현대인이 느끼는 불안은 중고등학교 때 친구가 월등하게 풍요롭거나, 학력(또는 학벌)이 '나보다 좋을 때' 발생하는 '비교 불안'이다. '비교 불안'은 다음에 다루는 '관계 불안'이나 '존재 불안'에 비하면 가벼운 불안이다. 이런 종류의 불안에 대한 해소는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을 읽으면 도움이 된다. 

     

    1.2. 관계 불안

     

     두 번째 불안은 '관계 맺음에서 비롯되는 불안', 즉 '관계 불안'이다. 관계 맺음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사람이 삶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간에 관계를 맺어야만' 한다. 키에르케고르가 말하는 절대자-신과의 관계 맺음 이전에,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서 관계를 맺고 세계 속에 존재하게 된다. 거칠게 말하자면, '삶은 관계맺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관계를 맺는 일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사람과 맺는 관계'와 '사물과 맺는 관계'가 그것이다.

     

    1.2.1. 사람과 맺는 관계에서 오는 불안

     

      우선 사람과 사람이 맺는 관계는, '세계와 세계의 교섭'에 가깝다. 한 사람은 세상에 내던져지면서, 부모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 세계는 한 개인이 경험하고, 관계를 맺으면서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할 때, '나를 중심으로 한 관계들의 네트워크망'을 세계라고 할 수 있다. 한 사람의 세계는 그 사람이 어떤 어른들과 관계 맺으며 성장했는가에 의해 초기 세계가 결정된다. 그 뒤에 가족을 벗어난 2차 집단에서 맺는 관계를 통해서, 계속적인 '세계의 갱신'이 이루어진다. 가족을 벗어난 2차 집단의 성격이 굉장히 중요한데, '협동적'인가 '이익추구적'인가에 따라 세계가 달라지게 된다.

     

    1.2.1.1. 협동적 집단(Gemeinschaft) : 인정과 공유


      협동적인 집단에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경우, 심리적인 안정감을 쉽게 얻게 된다. 구성원은 서로가 속해 있는 집단의 문화를 공유하고 각자의 존재를 인정하며, 인정받으면서 실제로 '너와 나의 가치는 같다'라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이런 집단에서 오랫동안 관계를 맺을 경우, 편안함과 평범함, 안락함을 얻게 되지만 '세계는 정체'된다. 사람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있는 존재이지만, 타인은 '나'를 고정된 실체로 인식하고 반영하려 한다. '협동집단'에서 존재하는 타인은 보통, '나'의 세계와 비슷한 세계를 공유하고 있다. 이럴 경우, '나'의 존재는 타인의 반영에 의해 정체성이 고정되는 경우가 많고,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하다고 여기게 된다.

     

      현대인은 협동적인 집단에 안주하기 어렵다. 과거의 씨족 마을, 대농장의 생활 방식이라면, 평생을 협동 집단에서만 관계를 맺고 살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현대의 한국 사회처럼, 분업화된 생활 방식에서는 '이익집단'을 선택해서 관계를 맺어야 한다. 두 번째 불안인 '관계 불안'은 협동적인 세계에서 구축된 '고정된 세계'가 이익추구적인 세계와 마주하게 되면서 시작된다.

     

    1.2.1.2. 이익집단(Gesellschaft) : 선택과 갈등

     

      이익추구적인 집단은 '선택과 갈등'을 품고 있다. 정치적으로 신분제가 사라지면서 경제적으로 월등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전문화'는 단지, 그들의 경제적 지위를 확고하게 하려고만 만들어낸 제도는 아니었다. 사실, 전문화는 사회의 여러 방면에서 기여하며, 급속한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전문화는 '전체로서의 일'을 부분화, 분업화한 각 분야의 '달인'을 만들어 냈고, 한 분야의 전문가는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일도 생기게 됐다.

     

      이러한 사회에서 현대인은 필연적으로 어느 한 분야를 선택해서 관계를 맺어야 한다. 작게는 어느 대학, 무슨 학과에 진학할 것인지, 어떤 업종으로 갈 것인지, 취업-창업-시험-학업의 갈림길에서 선택을 하고 자신의 삶을 떠안아야 한다. 어느 한 이익집단을 선택하고 구성원이 되면, 다른 이익집단과 갈등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게다가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자신이 속한 집단 내부에서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협력 집단에서 형성된 '내가 생각하는 나'와 이익집단에서 만나게 되는 '타인이 보는 나'의 모습이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익집단에서는 '위로와 공유'가 드물다.

     

      이익집단에서 빚게 되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보통 우리들은 연인이나 친구를 그리워한다.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는 삶의 한 부분으로 '이익집단의 삶'을 받아들이지만, 선택과 갈등을 떠나 '온전한 나'를 받아주는 '협동집단의 삶'을 계속 원하고 있다. 힘겨운 일을 당했을 때, 연인이나 중고등학교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를 찾는 일이 일상에서 쉽게 보는 사례이다. 친구와 '매일'을 함께 보낼 수 없기 때문에, 연인을 만들고 결혼하면서 삶을 공유하고 위로받으며 안정을 구한다.

     

    1.2.2. 사물과 맺는 관계에서 오는 불안 : 목적과 수단

     

      '사물과 맺는 관계'는 대체로 '나'의 경계를 확장하는 형태로 맺는 관계망이다. '나의 존재 가능성'을 확장하거나,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 사물과 관계를 맺게 된다. 우리는 "망치를 못을 박기 위한 것으로 사용할 수 있고, 못은 다시 시계를 걸기 위한 것으로, 시계는 다시 시간을 읽기 위한 것으로 사용될 수 있다." 사물을 도구로 이용하면서, 우리들은 궁극적으로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사물과 관계를 맺으면서 '나의 세계'를 이룬다.

     

      불안은 '수단을 목적으로 삼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예를 들면, 예쁜 핸드백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고 하자. 자신의 정체성이 확고한 경우라면 핸드백은 '무엇을 담고 다니기 위한 수단'으로 '나'와 맺어진다. 이 때에 핸드백은 수단이 되고, 나의 존재는 목적이 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경우라면, 핸드백 자체가 '나를 담아내는 목적'이 되면서 '나의 본질'에 대한 것은 수단으로 전락한다. '지금 여기 나'의 활동 가능성을 위한 도구로서의 핸드백이 아니라, '핸드백을 갖기 위한' 도구로서의 '나'로 바뀌게 된다. 그 순간, 자신의 가치는 핸드백을 갖게 되느냐, 갖지 못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게 되면서, 갖지 못하게 될 경우에는 불안에 휩싸인다. 자기 자신의 가치를 입증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 빠지는 것은 심한 경우라고 할 수 있겠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무대에 무언가를 잔뜩 가져다 두기를 원한다. 도구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나의 가능성'을 확장시킬 수 있는 존재물이기 때문이다. 자동차는 나의 다리를 확장시켜서, 한정된 시간에 더 넓은 공간을 점유할 수 있게 만든다. 펜과 종이, 키보드와 모니터는 나의 뇌에서 벌어지는 생각을 확장시켜서 좀 더 구체적이고 정밀한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든다. 총, 세균, 칼도 나의 손이 다른 생명을 살상하기 위한 도구로 선택할 수 있는 수단들이다. 이러한 예는 무수히 많다. 안경, 망원경, 현미경은 눈을 확장시키고, 옷과 신발, 목걸이 등은 피부를 확장시킨다.

     

      그러나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어느 순간 "이것이 전부는 아닌데..."라는 것을 느끼는데, 그 순간이 바로 자기 존재의 추락을 우려하며 느끼게 되는 불안의 순간이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불안을 자각하는 기제를 가리켜 '양심'이라고 정의하고, '신 앞으로 불러 세우는 침묵의 소리'라고 묘사한다.

     

      우리는 좀처럼 그런 양심의 소리를 듣기 어려워 한다. 그러나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찾고, 피천득 선생의 <인연>을 찾아 읽고,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과 같은 책들을 찾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양심'을 갈구하고 있다. 글의 서두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는 삶의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도 받지 못한 채 데뷔했고, 조명을 받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며 살아간다. 어쩌면 평생토록 스포트라이트 한 번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정신없이 살아가는 순간에는 내가 나에게 건네는 낮은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무대의 조명이 꺼지고, 막이 전환될 때. 타인과의 관계가 멈추고, 오로지 사물과 나의 관계만 남아 있을 때에 '양심'이 들리고, 불안이 시작된다. 이 불안은 새로운 가능성을 위한 첫걸음이 된다.

     

    1.3. 존재 불안

     

      세 번째 불안은 가장 본질적이고 해결 방법이 무척 까다롭다. '인간 존재의 필연적인 소멸에서 오는 불안'인 '존재 불안'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지 않는 이상 해결할 수 없다. '존재 불안'은 두 가지 원인에 의해서 나타난다. '생명의 위협'과 '존재 가능성의 차단'으로 구분할 수 있다.

     

    1.3.1. 생명의 위협

     

      매슬로우의 욕구 단계론 중, '1단계 생리적 욕구'와 '2단계 안전에 대한 욕구'가 여기에 해당한다. 1단계인 생리적 욕구에 속하는 먹고 자는 문제는 생명과 직결된다. 이것의 충족은 그 어떤 것보다 우선하기 마련이다. 현대 사회에서 보통의 경우에는 생리적 욕구 때문에 불안을 느끼는 경우는 드물지만, 경제적으로 절대적 약자에게 여전히 나타나는 불안이기도 하다.

     

      2단계인 안전에 대한 욕구에서 생겨나는 불안은 과거나 현재를 넘어서 미래에도 계속 나타날 것 중의 하나다. 범죄자로부터의 위협은 일상에서 마주할 수 있는 불안의 원인이다. 우리나라나 중동에서는 '전쟁'에서 느끼게 되는 불안도 종종 마주하게 된다. 1단계의 생리적 욕구나, 2단계의 안전에 대한 욕구는 '죽음의 존재'를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게 만들어 버린다. 하지만 사회가 안정되고, 풍요로워지면 점차 잊게 된다.

     

      실제로 생명의 위협에서 발생하는 불안은, 한 개인의 힘으로 없앨 수 없다. 일정 규모 이상의 공동체에서만이 이러한 불안을 없앨 수 있다. 홉스의 <리바이어던>에서 말하는 '사회계약으로 성립된 국가'가 주체가 되어 해결할 수 있다. 훗날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1단계와 2단계의 위협에 대한 욕구의 범주를 벗어나, 도덕적인 가치까지 부여하며 '공동의 선'으로 논의를 확장한다. 그 뒤에 국가 간에 발생하는 문제는 '이익집단' 간의 갈등이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다루기 어렵다.

     

    1.3.2. 존재 가능성의 차단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협력적 공동체의 일원으로 존재하면서 타인과 관계를 맺고, 사물과 관계를 맺으면서 '나의 세계'는 무한하게―시간이 허락하는 한― 갱신될 수 있다. 나의 선택에 책임을 진다면, '나'는 그 무엇이라도 될 수 있다. 인간은 상하좌우 360도의 공간으로 모든 가능성을 얻고 태어난다. 다만, '시간과 공간'의 한계와, '이미 존재하는 세계'라는 제한. 이 두 가지 조건이 있을 따름이다.

     

      인간의 가치는 그 존재 가능성을 얼마만큼 발휘해서 성취하느냐에 따라 달려있다. 처음에 말한 것처럼,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에게 '가치롭고, 의미있는 것'은 오로지 '삶의 과정'에서 이루어내는 성취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통, '훌륭하다, 위대하다'라고 말하는 삶은 다음과 같다. '부여된 환경에 순응하거나 타인의 잣대를 그대로 수용하기를 거부하지만, 그것은 그것 그대로 인정하고, 자신이 가진 모든 가능성을 발휘해서 최선의 상태로 자신의 세계를 확대하는 삶의 과정을 드러낼 때' 우리는 '훌륭하다-위대하다'라고 정의내린다. 

     

    1.3.2.1. 시간과 공간


      사람은 모두 시간 속에 살아간다. 과거의 선택이 현재를 만들어 내고, 과거를 토대로 존재하는 현재에, 자신의 선택으로 미래가 형성된다. 여기에서 인간은 '정체성'과 '가능성'의 문제에 마주서게 된다. '정체성'을 과거와 현재의 문제라고 한다면, '가능성'은 과거-현재(과거가 축적되며 얽혀서 이루어진 현재)와 미래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정체성', 즉 '자아 정체성'은 어느 한 순간 이루어지지 않는다. '타인과 시간의 세례'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앞에서 말한 '사람과의 관계 맺음'을 통해 '나'의 정체성이 이루어지게 된다. '나'의 정체는 다양하다. 때와 장소에 따라서 그 무엇이라도 될 수 있다. 무대는 같지만, 상연 작품이 무수히 달라질 수 있듯이 '나'의 정체 역시 변화무쌍하다. 그러나 특정한 때와 장소에서 마주하게 되는 타인은 그렇지 않다. 타인의 존재는 '나'의 정체를 고정시키려 한다. 나와 타자의 관계 맺음에서 불안이 형성되고, 타자를 인식할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한 '나'가 되어야, 비로소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다. 이것은 헤겔이 고민한 '즉자적 존재'가 '대자적 존재'로 나아가는 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다.


      연필은 그저 연필로 존재할 뿐이지 그 자체로 다른 무엇이 될 수는 없다. 연필 그 자체는 시간과 공간에 따라 정체가 달라지지 않는다. 16세기 영국, 엘리자베스 1세 시절에 만들어진 흑연 연필은 500년 가까운 시간과, 영국과 한국이라는 공간이 달라졌지만 그 정체는 '연필'로 고정되어 있다. 연필은 오직 사람의 손에 의해서만 다른 무엇으로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여받는다. 그 가능성 역시, 일반적인 경우라면 '연필'에 그치고 만다. 다른 존재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특수한 시간과 공간이라는 상황이 주어져야 한다. 타인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는 사람에게 연필은 '흉기'로 변화한다. 이처럼 사물의 가능성은 사용하는 사람의 세계에 의해서만 부여된다.


      그러나 사람은 고정된 정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 스스로 다른 무엇이 될 가능성을 품고 있다. 연필처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고정된 정체를 자각 없이 갖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이 달라지면 사람의 정체성-인식은 무한하게 바뀐다. '되고 싶은 나'와 '타인이 보는 나'의 갈등은 사춘기 시절, 즉 학생 시절에 처음 생겨난다.


      협력적 성격을 갖는 집단에서 '나'는 '되고 싶은 나'가 되기 쉽다. 거기에서의 관계 맺음은 서로가 서로의 존재 방식을 인정하고 각자의 세계를 인정한다. 설사 '되고 싶은 나'의 모습 가운데 몇 개를 실패하더라도, 집단의 구성원들은 서로에게 위로가 된다. 그러나 이익추구적 성격의 집단에서는 각 개인은 연계성을 잃고, 선택을 위한 경쟁과 거기에서 생성되는 갈등으로 인해 자기 정체성을 위협 받는다. '되고 싶은 나'는 자꾸 작아지고, '타인이 보는 나'는 거인이 되어 간다.


    1.3.2.2. 이미 존재하는 세계


      인간의 비극은 '이미 존재하는 세계'에 '원하지 않게 내던져진 존재'라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태어난 것은 내 책임이 아니지만, 내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타인에게 전가할 수 없는 '내가 떠안은 일'이다. 우리는 시간의 길을 걸으면서, 타인을 통해 나를 확인하고 갱신하는 과정을 무던히 겪게 된다.

     

      이미 존재하는 세계는 태어나자마자 주어진 세계이다. '내가 노력해서' 만들 필요가 없다. 이미 정해진 규범이 있고, 규칙이 있다. 한국에는 한국의 문화가 존재하고, 한국인이 소통하는 방법에는 정해진 문법이 있다. 이러한 세계를 자신의 것으로 고스란히 받아들이면 편하다. 이미 존재하는 세계를 나의 세계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평범하지만 안락한 삶을 보장 받는다. 실패해도 괜찮다. 자신이 만든 규범과 규칙이 아니기 때문에, 그 세계를 만든 타인들을 비난하고 그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면 된다. 이런 사회에서는 '나의 정체성'과 '존재 가능성'은 내가 아닌 타인의 시선에 의지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나'는 '연필'과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다. 이것이 일상의 세계이다.

     

      심리학자 비고츠키가 언급한 '사회적 구성주의'는 '이미 존재하는 세계'에 처음 발을 디딘 초보자로서의 '나'의 역할 변화를 설명하는 데 유용하다. 사회적 구성주의에서 한 개인은 처음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전문가로부터 지식을 전수받아 점차 한 명의 전문가로 자립하게 되고, 다음 세대의 전문가로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게 된다.

     

      '정체성'과 '가능성'을 이상적으로 모두 이루어낸다면, 비고츠키가 말한 그 과정을 그대로 밟게 된다. 도제에서 전문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시험하고,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서 '훌륭하거나 위대함'을 빚어낼 수 있다. 하지만, 이 과정이 역효과를 일으킨다면 한 개인을 죽음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

     

      사회적 구성주의의 관점에서 '삶의 의미'를 본다면, '한 개인의 존재를 타인과 함께 갱신해가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만약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세계의 힘이 지나치게 강해서, 개인을 억누르거나 '되고 싶은 나'의 모습을 하나씩 제거하고, 부정적인 정체성을 부여하고 강제하게 되면 '나'는 '존재 가능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넓은 가능성을 차단당할 때, 그 개인에게 남은 가능성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밖에 남지 않는다.

     

      학생들의 자살과 군대에서의 자살, 신용불량자의 자살이 나타나는 맥락도 '존재 가능성이 차단됨으로써 발생하는 불안'에서 빚어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2. 불안을 막는 장치

     

      인간은 불안을 막기 위해 몇 가지 장치를 만들어 냈다. '합리화', '사랑', '반성', '망각'이 그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에서 오는 불안을 막기 위해 '합리화'를 작동시킨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사랑'에 빠지고, 사물과의 관계에서 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반성'하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가장 본질적인 문제인 죽음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 우리는 '망각'을 선택했다.

     

    2.1. 합리화 : 비교 불안의 해소법

     

      '나와 너는 같은 존재 가치를 지닌 존재'라는 명제를 토대에 두고 시작한다. 여기에 '신은 공평하다'는 명제까지 이끌어 들여서 합리화를 작동시킨다. 경제적으로 월등한 사람을 바라보며, '저 사람은 OO가 부족할 거야, 인간관계가 좋지 않을 거야'라고 추측한다. 혹여, 그 사람이 이혼을 했다든가 아이가 아프다든가 경제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안고 있다면, '그럼 그렇지'라고 속으로 외치며 안도한다.

     

    2.2. 사랑 : 이익집단에서 협력집단으로 회귀

     

      예측할 수 있는 삶은 안정되어 있다. 아무런 조건 없이 존재 가치를 인정받고, 언제나 지지를 받는 일은 휴식과 같다. 우리들은 유년 시절, 협력적 공동체에서 경험한 따뜻한 관계를 잊지 못한다. 그러나 어른이 되고서 대부분의 삶은 이익추구 집단에서 선택과 갈등을 반복하며 보내게 된다. 그렇게 지친 우리는 협력 집단으로 돌아가기를 꿈꾸며, 사랑을 시작한다. 과거에 있었던 가족과 친구의 세계는 '어른이 된 나의 세계'와는 거리가 있다. 지금 나의 세계를 이해하고,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을 찾게 되면 우리는 쉽게 공동체에서의 추억을 떠올리며 사랑에 빠진다.

     

      사랑을 나누던 두 사람이 헤어지게 됐을 때, 큰 충격을 받는 쪽은 평생토록 함께 만들려 했던 '협력집단'을 그리던 사람이다. 이익집단의 틈바구니에서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관계로 여기다가 어그러지게 되면, 세계로부터 배신당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 충격을 '존재 가능성'이 차단된 것으로 여기게 되면, 죽음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2.3. 반성 : 물건과 나의 관계 돌이켜보기

     

      자신의 가능성을 계속해서 확장하기 위해 물건을 수집하는 경우도 있다. 그와는 다르게 어떤 물건 하나에 자신의 정체성 일부를 투사시켜서 또 다른 자기로 여기는 경우도 있다. 이 두 가지 물건과 관계를 맺는 양식에 따라 그 결과는 엄청나게 달라진다.

     

      가능성을 활용해서 어떤 성취를 이루어 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물건 자체를 수집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경우에는 어느 순간 공허함이 밀려든다. 위에서 이미 언급한 것처럼,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이 순간을 언제 느끼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존재 가치가 달라질 수 있다. 불안을 디딤돌로 삼은 '반성'은 노벨이 그랬던 것처럼, 빌 게이츠가 그랬던 것처럼 '훌륭함과 위대함'을 이룩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두 번째로 어떤 물건에 자신의 정체성을 투사시키는 경우에는 다른 상황이 벌어진다. 그 물건을 사용하거나 바라보면서, 자신이 그 물건에 쏟았던 삶과 의미를 돌이켜보는 기회가 생긴다. 어떤 물건과의 관계가 긴밀해지면, 타인에게서도 그 관계를 인정받고, 그 물건을 보게되면 자동적으로 '그 사람'이 연달아 떠오르게 된다. 하나의 물건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죽음 이후에는 그 물건을 통해 존재할 수도 있다.

     

    2.4. 망각 : 시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의 몸부림

     

      인간이 소유한 것 중에 가장 효과적인 진통제는 '망각'이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것은 일종의 천벌에 가깝다. 실제로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가 존재했다. 러시아의 언론인이자 기억술사였던 솔로몬 셰르솁스키가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실제로 듣고 본 것의 모든 것을 기억했고, 오랜 세월이 흘러도 그대로 기억해낼 수 있었다고 한다. 망각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그는 행복하지 않았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사람의 얼굴을 볼 때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모든 표정을 기억하고 있어서 한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보르헤스의 소설 <기억의 천재 푸네스>에서도 망각을 잃어버린 사람의 처지를 이야기한다.

     

      "그는 플라톤적인 생각들을 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는 <개>라는 종목별 기호가 다양한 크기와 형상들을 가진 상이한 수많은 하나하나의 개들을 포괄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 그는 전혀 힘들이지 않고 영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 라틴어를 습득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가 사고를 할 수 있을 것인가하는 의심이 들곤 했다. 사고를 한다는 것은 차이점을 잊는 것이며, 또한 일반화를 시키고 개념화를 시키는 것이다." -p.187, 188 <픽션들>

     

      인간에게 시간은 24시간으로 반복되는 365일의 연속이 아니다. 우리는 출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는 직선에 놓여있다. 인간은 폭포처럼 죽음을 향해 낙하하는 시간을 잊기 위해, 시간에서 마디를 찾아 반복되는 삶을 만들어 냈다. '오늘과 같은 내일, 올해와 같은 내년'처럼 시간의 마디를 만들어내면서 '비교와 예측'이 가능해지고, '직선의 시간'을 '원형의 시간'으로 변형시켜 이해하게 되어버렸다. 그러자 사람들은 '시간이 원래 직선'인 것을 잊었다. 그런 뒤에야, 죽음을 잊고 '지금 여기'의 삶에 집중할 수 있었다.

     

    3. 맺음 : 불안과 자각. 가능성의 최대화.

     

      죽음에 대한 불안을 느끼는 우리는 시간을 왜곡시켜서, 현재에 집중하며 살아간다. 불안을 느끼는 것과 불안을 자각하는 것은 차이가 크다. 잠시 자신의 무대에서 연기하는 것을 멈추고, 조용하게 주변을 둘러보는 일이 필요하다. 내면에서 자기에게 말을 걸어오는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주어진 일만 해나가면 편안함이 보장되어 있는 일상의 세계에서도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자신의 삶을 이미 만들어진 세계에 끼워 맞추며 살다가 실패하면, 그 책임을 남에게 전가해도 받아줄 존재는 없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삶의 환경을 확인하고, 떠안아서 살아가며 자기 존재를 증명하는 일이 가장 본질적인 일이다. 자신의 가능성을 확장하고,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처럼, 관계를 맺고 있는 타인들의 세계도 존중하며 인정할 필요가 있다.

     

      이미 주어진 세계에 던져진 우리들이지만, 그 속에서 의미를 찾고 새로운 규칙과 문화를 만들며, 세계를 갱신해가는 존재가 바로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의 독특함이다. 그 독특함을 최대한 실현시키는 게 비극을 희극으로 각색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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