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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뮈-그르니에 서한집 | 카뮈-그르니에
    문학 2013. 4. 20. 13:25





    카뮈 그르니에 서한집

    저자
    알베르 카뮈 지음
    출판사
    책세상 | 2012-10-30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공감과 차이로 난 우정의 길을 따라가는 시간!『카뮈-그르니에 서...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짐승은 즐기다가 죽고 인간은 경이에 넘치다가 죽는다. 끝내 이르게 되는 항구는 어디일까?”

      벌써 5년 전이다. 화창했던 2007년의 5월, 장 그르니에의 <섬>을 펼치고 가장 먼저 충격을 받았던 문장이었다. 게다가 본문이 시작도 하기 전에, 서문에서 카뮈에게 이런 충격을 받게 될 줄은 예상도 못했다. 뻔한 주례사 서문이라든가, 미사여구로 꾸며진 서문이 아니었다. 카뮈의 서문은 <섬>에서 다루고 있는 생각들을 모두 꿰어버리는 역할까지 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핵심을 꿰뚫을 수 있을까―그저 의문이었다. 뒤에 장 그르니에와 카뮈가 스승과 제자였다는 걸 알고 끄덕였던 기억이 있다.

      친구가 알려왔다. "<카뮈-그르니에 서한집>이 나왔다"며 기분 전환용으로 읽으면 어떻겠냐고 했고, 거의 출간되자마자 사들였다. 그리고 한참 묵혔다가, 펼쳐들었다. 두 사람의 편지는 분량도 많았지만, 내용도 쉽지만은 않았다. 다행이 믿을 수 있는 김화영 선생의 번역 덕분일까, 두 사람의 대화가 우리말처럼 쉽게 흘러드는 것이 다행이었다.

      두 사람의 편지는 마치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들의 대화 같다. 스승인 장 그르니에는 철학을 공부하고 에세이를 쓴 사람이었고, 제자인 알베르 카뮈는 철학을 공부하고 소설과 희곡을 쓴 사람이었다. 편지들의 길이도 다양했다. 한 줄짜리 전보에서부터 새로 쓰고 있는 원고에 대한 비평과 첨삭까지 붙은 매우 긴 편지까지. 일상의 가벼운 일들도 있었지만, 서로의 생각에 대해 동의하면서도 다르게 생각하는 것까지 담겨있었다. 편지로 대화를 하면서 서로의 철학을 깊이 있게 가다듬어 간다는 느낌이 든다.

      저는 또한 프루스트가 대단히 위대한 작가라고 선생님께 솔직히 말씀드릴 수 있게 되어서 기쁩니다. 얼마나 대단한 생명력입니까! 그는 진정한 창조자입니다. 그리고 전체를 관통하는 그 힘과 디테일에 있어서의 세밀함 사이의 대조가 너무나도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사실 그의 책을 덮을 때는 다소 씁쓸한 느낌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느꼈던 너무나 많은 것들을 그 속에서 발견했기 때문에 끝에 가서는 "모든 할 마을 이미 다 해버렸구나. 새삼스럽게 다시 말할 필요가 없게 되었어" 하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p.20, 1932. 8. 25, 카뮈
      두 사람은 스승과 제자로 관계가 시작됐다. 그리고 그 대화는 30년 동안, 카뮈가 교통사고로 죽기 직전까지 이어졌다. 이 두 사람의 관계가 편지 곳곳에서 드러난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면서 겪었던 정치적, 사회적 상황이라든지 경제적인 어려움, 건강상의 문제, 가족과 친구들과의 문제까지 진솔하게 털어 놓고 있었다. 어떤 편지에서 그르니에는 카뮈에게 돈을 빌려달라는 요청도 한다. 두 사람의 관계는 카뮈가 자신의 독자적인 세계를 이루면서부터, 스승과 제자의 관계라기보다는 동반자이자, 서로의 거울처럼 보인다. 이런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좀처럼 보기 힘들다. 어떤 면에서는 공자와 안회의 관계보다도 이상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선생님도 잘 아시겠지만 본래 별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답장을 하게 되지요. 그만한 시간은 언제나 있으니까요.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소상하게 이야기를 늘어놓고 싶다보니 나중으로 미루게 되는 겁니다. 그러다가 그만 시간이 흘러가버리지요. -p.234, 1949. 1. 15, 카뮈
      당신이 내게 신세진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단지 나를 알게 되었을 때 당신의 나이가 아주 어렸었다는 이유 바로 그것밖에 없습니다. -p.362, 1960. 1. 1, 장 그르니에. 마지막 편지
      책을 읽는 사람들은 작가의 사생활을 궁금해 한다. 나도 그런 부류의 하나이고, 어떤 경우에는 작품보다 작가의 사생활이 더욱 흥미롭기도 하다. 문학가들의 사생활은 보통 다른 누군가에 의해 묘사되거나 설명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전에 이 책의 번역자인 김화영 선생이 <한국 문학의 사생활>이라는 책으로 작가들과 대화한 내용을 엮기도 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카뮈―그르니에 서한집>은 카뮈와 그르니에의 글을 아끼는 사람들에게 흥미로운 읽을거리이다.

      저는 알제의 거리를 돌아다니며 여러 날 저녁을 보냈습니다. 전에 알던 여자애들은 뚱뚱한 엄마들이 되어 있더군요. 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서 제 나이를 읽게 되지요. -p.224, 1948, 3, 9. 카뮈
      이 책의 아쉬운 점은 딱 하나 있다. 이 책의 독자는 매우 한정되어 있다. 우선 카뮈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방인>과 <페스트>, <시지프의 신화> 정도는 읽거나 내용을 알고 있어야 한다. 게다가 장 그르니에를 알아야 하고, 그의 <섬>, <일상적인 삶> 정도의 에세이집을 읽어야 한다. 그래야만 이 책, 카뮈와 그르니에의 편지들을 쉽사리 읽을 수 있고, 어떤 맥락에서 그런 소설들이 집필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카뮈와 그르니에의 팬이라면, 소장해두어도 좋을 책이다. 빨리 절판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된다.



    <책에서>

      사실 젊은 사람은 완전히 포기하지는 못하는 법입니다. 모든 무기력이 다 합쳐진다 해도 그가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재기의 힘을 앗아가지는 못합니다. -p.30, 1934. 8. 17, 카뮈

      하이네의 어떤 문장을 읽게 되었는데 그 말이 일깨우는 엄청난 예감에 몸서리가 쳐졌습니다. "지금 이 세계가 추구하고 희망하는 것이 내 마음과는 아무 상관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그 말을 한 때는 1848년이었습니다! -p.205, 1947. 9. 14, 카뮈

      ...그런 건 알바 아니라는 듯 무관심한 프랑스 사람들에게 비극이라는 이름의 자양분을 공급하는 일에 동원될 예정입니다. 며칠 전에 어떤 경관이 제 자동차를 세우더니 제게 무슨 글을 쓰느냐고 묻더군요. 전 "소설을 씁니다" 하고 간단히 대답했지요. 그랬더니 강조하듯 다시 묻는 거예요. "애정소설입니까, 아니면 탐정소설입니까"라고요. 마치 그 둘 사이에 중간은 없다는 듯이! 그래서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반반이죠, 뭐." -p.362, 1959. 12. 28, 카뮈. 마지막 편지

      우리는 이 세계의 것이 아니다, 라는 것이 바로 철학을 추동하는 첫 번째 생각이다. 이 세계의 것이 아니지만 이 세계 속에 살아 있고, 살아 있음을 다행으로 여기고 행동하고, 행동함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눈에 세계가 좋지 않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p.439, 장 그르니에 <선택>

      "끝에 가서 제자가 스승을 떠나 자신의 독자적이고 다른 세계를 완성하게 될 때―실제에 있어서 제자는 언제나 자신이 모든 것을 얻어 가지기만 할 뿐 그 어느 것 하나 보답할수 없음을 잘 알고 있던 그 시절에 대하여 변함없는 향수를 지니게 될 것이면서도―스승은 흐뭇해한다." -p.445, 장 그르니에 <섬>, 알베르 카뮈의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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