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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 2013. 1. 25. 16:10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출판사
    비채 | 2012-06-27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소소한 일상을 특별하게 만드는 하루키의 에세이!세계적인 작가 무...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첫째, 남의 악담을 구체적으로 쓰지 않기. 둘째, 변명과 자랑을 되도록 쓰지 않기. 셋째, 시사적인 화제는 피하기. 이 세 가지 조건을 지키며 에세이를 연재하려고 하니 결과적으로는 화제는 상당히 한정된다. 요컨대 '쓸데없는 이야기'에 한없이 가까워지는 것이다. -p.34

     

      선선한 바람이 부는 청계천변의 광교. 늦여름이 지나고 제법 기분좋은 바람이 부는 초저녁 무렵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어느 한 카페의 야외 테이블에 둘러 앉아, 병맥주 하나씩 들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한동안 만나지 못하고 쌓아둔 각자의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놓으며 낄낄거리는 시간. 우리들은 그렇게 '쓸데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20대 초반의 젊음을 함께했다.

     

      - 야, 요즘 필스너pilsner가 자꾸 당기더라.

      - 작년에 펀드를 들었던 게 요즘 바닥이야.

      - 새 여자친구가 생겼다. / 또냐?

     

      우리는 살아가면서 세상이 무너지는 일을 경험한다. 가족의 죽음, 병, 사고 따위와 같은 개인적인 비극을 포함해서, 식민지가 되고 전쟁을 겪는 사회적인 비극까지 겪을 수 있다. 심장 깊숙한 곳에 입은 상처는 사람을 구렁텅이로 자꾸만 밀어 넣는다. 하지만 조금씩, 시간은 우리에게 '일상'이라는 빨간 약을 바르며 치유한다. 죽을만큼 아픈 고통도, 결국에는 가볍기 짝이 없는 일상의 소독을 통해 낫게 된다.

     

      하루키의 에세이는 깃털처럼 가벼운 일상의 잡담으로 상처를 소독한다. 그의 소설은 무거운 마음으로 읽게 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그의 에세이는 그렇지 않다. 마음의 상처를 '퍽 미지근한 미소를 머금은 쿨함'으로 위로한다.

     

    "꿈을 좇지 않는 인생이란 채소나 다름없다"라고 누군가 단호히 말하면 무심결에 "그런가?" 하게 될 것 같지만, 생각해보면 채소에도 여러 종류가 있고 채소마다 마음이 있고 사정이 있다. 하나하나의 채소의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면, 지금까지 인간으로서의 내 인생이란 대체 무엇이었을까 하고 무심코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된다(그럴 때도 있다). -p.15

     

      '읽어야 할 위대한 고전들이 이렇게나 쌓여 있는데, 뭐 그런 시시껄렁한 잡문따위를 읽는 거야?'라고 핀잔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진정한 깨달음은 자기의 삶과 가까운 일상에서 얻는 게 더 쉽다. 200년도 더 된 옛날 사람의 글을 어설픈 번역으로 읽을 때를 생각하면, 감동은 커녕 고통이 밀려온다. 정철의 <사미인곡>보다도,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가 우리에게 훨씬 쉽게 감동을 주는 것과 비슷하다.

     

    문명이라는 것은 뭔가 신기하다. 한 가지 편리함을 주면서 새로운 부자유도 한 가지 만들어준다. -p.142

     

      하루키의 다른 에세이처럼, 스스로 '쓸데없는 이야기'임을 자처한다. 딱히 진지함을 이야기하지도 않는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것들에 대해 잠깐 멈춰서 생각하는 이야기들. 친구들과 병맥주 하나씩 들고 낄낄대며 나누는 이야기들. 그냥 그래서 좋은 이야기 책이다.

     

     

    <책에서>

     

      어쩌면 '인간의 상상력이란 어느 정도 한정된 영역이 아니면 제대로 작용하지 않는다' -p.18

      

      예전에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내야수였던 데이비 존슨은 "일본에서 택시 지붕과 여성 브래지어에다 사인을 요청받은 적이 있다"고 밝혔다. 나는 아직 어느 쪽도 없었다. -p.111

     

      나는 제법 나이를 먹었지만, 나 자신을 절대 '아저씨'라고 부르지 않는다. …… 왜냐하면 "나는 뭐, 아저씨니까"하고 말하는 시점부터 진짜 아저씨가 돼버리기 때문이다. 여성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제 아줌마가 다 됐네"라고 말하는 순간(설령 농담이나 겸손이었다 해도) 그 사람은 진짜 아줌마가 돼 버린다. -p.112

     

      그래도 가끔 책장에서 거듭되는 이사에도 살아남은 오래된 책의 책등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렇구나, 나라는 사람은 결국 책에 의해 만들어졌구나' 하고 새삼 느낀다. ……물론 "여자들이 내게 약간의 수정을 더했다" 정도는 말할 수 있겠지만. -p.138

     

      농담이 아니고 엄청나게 비렸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내 위로 커다란 바다표범 한 마리가 올라와서 어떻게 해서든지 밀어제쳐 억지로 입을 벌리고 뜨뜻미지근한 입김과 함께 축축한 혀를 입안으로 쑥 밀어넣은' 것처럼 비렸다. -p.154

     

      로버트 오펜하이머……뛰어난 두뇌로 세상에 이름을 떨친 인물이다. 이를 테면 그는 어느 날 문득 단체를 원서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단지 그 이유만으로 한 달 만에 이탈리아어를 습득했다. 네덜란드에서 강의를 하게 되어 '그럼, 좋은 기회니' 하고 육 주간 공부하여 네덜란드어를 유창히 말하게 되었다. 산스크리트어에도 흥미가 생겨 <바가바드기타>를 원전으로 읽었다. -p.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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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oem_정원사_책들이 있는 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