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문학

10년 후 세상 | 중앙SUNDAY 미래탐사팀 지음

정원사 2011. 12. 31. 15:50



10년후세상개인의삶과사회를바꿀33가지미래상
카테고리 경제/경영 > 경제일반
지은이 중앙일보 중앙SUNDAY 미래탐사팀 (청림,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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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늘 불안합니다. 가죽팬티 입고 손에 돌도끼 들고 다닐 적부터 사람은 불안했을 겁니다. 오늘은 과연 배불리 먹을 수 있을까. 오늘도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 생존에 관한 불안감을 시작으로 농경시대를 지나고 산업사회를 살면서 불안감의 수준과 범위도 늘어난 것이겠지요. 저축해 놓은 쌀을 빼앗길까 걱정했던 불안감은 점점 자라나서, 다른 사람들보다 못나면 어쩌나 하는 '사회지위 불안감'까지 이르렀을 겝니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알랭 드 보통의 <불안_Status Anxiety>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어른들이 사회를 이끌었습니다. 힘이 더 세고, 돈이 더 많은 것도 영향이 컸겠지만 사실은 앞일을 잘 예측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지금까지도 점을 보러 다니거나, 어떤 도사의 예언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불안한 앞일 때문이겠지요. 최근에 또 한 권,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먹이로 삼는 책이 나왔습니다. 중앙일보 중앙 SUNDAY 미래탐사팀이 한국의 석학들과 함께 진단했다는 띠지를 두르고요.

  책은 모두 7가지 큰 갈래로 나뉩니다. "① 건강과 웰빙, ② 가정과 사회, ③ 문화와 교육, ④ 첨단기술, ⑤ 소셜미디어, ⑥ 환경과 에너지, ⑦ 글로벌 세상"으로 각 갈래별 3~6개의 잔가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을 꿰는 시각은 세 가지 정도로 추릴 수 있습니다. "돈, 기술, 기존 관념"입니다.

1. 돈이 없으면 존재도 미미한 세상

  "② 가정과 사회"의 첫 번째 주제는 <아파트의 변화, 늘어가는 싱글족, 작지만 고급스럽게 진화>입니다. 잠시 훑는 정도로 보면, 아주 당연한 흐름이라고 느껴집니다. 그런데 잠깐 멈춰서서 이 글이 담고 있는 행간을 읽다보면, 현재 젊은이들이 느끼고 있는 경제 상황과 거리가 멀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1인 가구 시대에 대처하는 미래의 주택정책은 무엇일까. 아파트를 비롯한 공동주택의 대량공급 위주로 펼쳐질 것이다. 혼자 살면서 단독주택에 살 가능성은 크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고시원과 같은 준주택, 다세대주택이나 원룸형 혹은 기숙사형, 도시형 생활주택이 정답은 아니다. 미래 사회의 신종 트렌드인 '싱글족 문화'에 부합하는 것은 소형, 고급, 임대 아파트일 것이다. -p.85
  이 책의 전략 독자층이 젊은이가 아니란 것을 드러내는 부분입니다. "싱글족 문화"의 유행은 "소형, 고급, 임대아파트"라고 규정하듯 말하는 것처럼 보이고, 마치 "다주택을 소유하신 여러분"께 앞으로의 트렌드를 따라 투자처를 "소형, 고급, 임대아파트"로 바꾸시라고 권유하는 느낌입니다. 그런데 사실 지금 젊은이들은 부모님의 품에서 벗어나기도 어렵고, 소형-임대아파트는 가능하겠지만 '고급'은 어렵습니다. 빚 갚기도 힘들거든요.

  그런데 이 책에서는 젊은이들이 결혼을 피하는 이유마저 개인에게 돌립니다.

한국 사회에선 2000년대 후반부터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인식됐다. 사랑과 자기실현에 관한 새로운 가치관이 확산됨에 따라 결혼을 하지 않아도 의미 있는 삶을 꾸릴 수 있고, 세상 모든 일을 부부 중심으로 대처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 때문이다. '88만원 세대'의 출현으로 부모 품을 떠나지 않으려는 의식도 한몫했다. -p.94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물론 필수가 아니고 선택으로 인식한다는 점은 중요합니다. 결혼이라는 제도를 "사회"에서 "개인"의 문제로 바꿔가는 과정이겠지요. 그러나 88만원 세대가 부모 품을 떠나지 않으려는 의식은 "떠날 수가 없기 때문"이라는 걸 저자는 간과하고 있는 듯합니다. 게다가 한국 남자가 지닌 기존의 여성관을 그대로 드러내기도 합니다.

결혼한 친구들을 만나면 가장 부러운 것이 아이다. 우리 사회는 결혼 친화적이지 않다. 결혼하면 여성이 포기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임신, 출산, 육아, 가사의 전부 혹은 대부분을 여성이 부담해야 한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결혼은 절대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남자친구는 결혼을 원한다. -p.99
  임신은 어쩔 수 없더라고, 출산, 육아, 가사는 남편들이 분담하기도 하고 해야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물론 저자는 현재 한국 사회에 가득한 관념들을 사실적으로 기술한 것이겠지만, 10년 뒤 한국 사회의 변화는 저자의 예측 범위 밖에 있는 게 아닐까요. 글을 쓰는 사람이 이전 시대의 렌즈를 그대로 미래에 갖다대면 어긋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2. 일부 기업의 희망찬 기술 덕분에 밝은 미래

  지구에 살고 있는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건, 기술이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 같습니다. 환경을 망친 것도 인류의 기술이지만, 되돌릴 수 있는 것도 기술이겠지요. 사람이 꿈꾸는 기술은 대부분 긍정적인 면만 봅니다. 이 책도 역시 마찬가지였구요.

정부가 스마트하이웨이 시범구간으로 만든 경춘고속도로에선 곳곳에 설치된 무선통신 장치와 차량 간 정보 소통으로 운전자의 조작이 없이도 차가 스스로 달릴 수 있다. 차에 설치된 차선 인식 시스템과 앞 차와의 거리 유지 시스템 등이 작동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p.226
  이 이야기는 지금도 기술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합니다. 다만 여기서도 문제가 되는 것은 돈과 자원의 문제입니다. 이 책에서는 스마트 시티, 로봇, 인공지능, 쇼핑, 교육 등의 이야기를 하면서 기술의 발전을 예측합니다. 행간에 담긴 이들의 생각을 보다보면, 우리나라에서 앞으로 10년 동안 성장할 수 있는 건 "삼성전자"와 "현대-기아 자동차", 3대 통신사 밖에 없겠구나 싶습니다.

  물론 이 책의 저자 집단에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들의 고민들이 어떻게 토의되어서 하나의 결론에 이르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 책의 아쉬운 점 중에 하나가 바로, 한 주제에서 파생되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전혀 얘기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3. 20세기와 같은 사회관

  2011년 한국은 양극화가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일부 부자만 더 부자가 되어가고,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해지고 중산층도 몰락해가는 중입니다. 이 책의 저자들도 이 점을 우려합니다. 그런데 저자들의 시각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을 조망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날로 치열해지는 직업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상위권 학생들은 점점 더 전통 명문대학으로 몰려들 것이다. -p.137
요즘 젊은 세대는 항상 디지털 군중과 몰려다니는 까닭에 스스로 생각할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 책과는 담을 쌓은 소위 영상 세대에게 내적 성찰이니 사유니 하는 단어들은 낯설기만 하다. -p.274
  직업을 갖기 위해서 명문대학으로 간다는 건 안타까운 이야기입니다. 대학은 연구와 교양있는 지식인을 기르는 곳이지 취업 양성소는 아니겠지요. 물론 수준 높은 연구를 통해 사회에 기여하는 부분도 있고, 교양있는 지식인들은 탁월한 인재가 되어 기업을 키워가는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겁니다. 문제는 명문대학을 직업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하는 직업 양성소로 전제하고 이 글을 썼다는 점입니다. 앞으로의 10년 이후에도 지금 갖고 있는 대학교육과 기업의 관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지 않으면 곤란할 때가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 하나, 저소득층에 대한 관점도 변하지 않은 그 상태 그대로입니다. 저자는 왜 한국의 젊은이들이 힘든 노동을 피하려 하는지, 자꾸만 대기업과 공무원만 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분석을 회피한 채, 미봉책만 제시하는 것 같습니다.

저소득층에게 일자리를 공급하기 위해선 외국인 노동자들의 유입 속도와 규모를 조절해야 한다. 즉 하위 계층의 생활 및 고용의 질을 동시에 높일 정책이 필요한 것이다. 고용의 질이 양극화될 경우엔 생활의 질을 보장하는 정책들을 적극 도입할 필요가 있다. -p.341
  저소득층 일자리를 공급하기 위해서 외국인 노동자들의 유입을 조절해야 한다는 발상은 참 대단합니다. 유럽이나 미국의 노동자들은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갖고, 실제로 중산층으로 살아갑니다. 왜 한국의 저소득층은 외국 노동자들과 경쟁을 해야 할까요. 일자리에 대한 급여 수준과 복지 수준을 전체적으로 높여야 하는 점은 무시하고, 외국인 노동자들을 조절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자 중의 한 사람인 이양수, 중앙SUNDAY 편집국장 대리의 글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중앙SUNDAY가 선정한 '10년 후 세상'의 33가지 주제는 우리의 삶과 생활을 중심으로 선정됐다. 국가나 사회 못지않게 개개인의 선택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반영한 것이다."

  이틀 동안 이 책을 다 읽고 든 생각은, 그가 말한 '우리의 삶과 생활 중심'에 우리 젊은 사람들은 거의 포함되지 않았구나 하는 것입니다.

<책에서>

  카이스트의 모든 강의를 궁극적으로 영어로 제공하려던 서남표 총장의 소신은 나름대로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의 꿈대로 카이스트가 진정 MIT와 정면으로 경쟁하려면 카이스트의 언어는 당연히 영어라야 한다. 시간이 흐르면 점차 영어 강의가 불편한 교수들은 다른 대학으로 자리를 옮기고 카이스트의 교수진은 절반 이상이 외국인 교수로 채워질 것이다. -p.141
  
  "전자책으로 된 동화책에 익숙한 아이들은 종이책을 읽으려 들지 않는다. 아이러니하지만 많은 전자책 관계자들이 자신의 아이들에겐 전자책 대신 종이책을 읽힌다." -p.172
   
  중국은...국가자본주의가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 체제의 핵심은 국가와 자본의 결합이다. 국유 기업, 은행들을 앞세워 전 세계의 자원을 쓸어 담고, 다른 나라의 국채를 사들여 영향력을 높여간다. 공산단이 정치적으로 연성화되는 한편 경제적으로는 여전히 막강한 리더십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다. -p.350